Appropriation|불러다 준 그림
언젠가 작업실에서 그림들을 펼쳐놓고 낯설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던 중 저장된 스마트 폰에 꽤 많은 용량의 이미지를 집합해놓고 보니 내 기억의 일부가 녹아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고 느끼고 선택한 것을 전기적 신호로 기록하여 순간의 기억을 물질의 행태로 바꾸어 놓은 이미지의 집합체가 만약 나의 개인적 취향도 보존되는 장소라면 디지털 화면은 그것을 간접으로 보여주는 표면(창문)이라 하겠다.
불러다 준 그림 _ 90 x 60cm _ Oil on canvas _ 2009
불러다 준 그림 _ 100x100cm _ Oil on canvas _ 2009
불러다 준 그림 _ Oil on canvas _ 50×100cm _ 2009
불러다 준 그림 _ 113x60cm _ Oil on canvas _ 2009
나의 작업 소재가 되는 자료들은 내가 직접 본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먼 곳에 있는 것을 내 눈앞에 생생하게 존재하게 만든 즉, 개인적 취향이 '불러다 준 이미지'들이다. 개인적인 취향이라 함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가 될 수 있으며,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나 또는 예전에 방문했던 곳이 될 수도 있다. 나는 현실과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에 표현하고 싶었다.
불러다 준 그림 _ 100 X 100cm _ Oil on Canvas _ 2009
불러다 준 그림 _ 240 X 80cm _ Oil on Canvas _ 2009
불러다 준 그림 _ 164 X 70cm _ Oil on Canvas _ 2009
불러다 준 그림 _ 164 X 70cm _ Oil on Canvas _ 2009
불러다 준 그림 _ 89 X 52cm _ Oil on Canvas _ 2010
불러다 준 그림 _ 80 X 117cm _ Oil on Canvas _ 2009
화면은 현실세계의 단편적인 모습과 모니터 안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모니터를 중심으로 뒤쪽의 어둠 속에서 언뜻 보이는 쌓여 있거나 책장에 꽂힌 책의 현실적인 대상들과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개인적 취향이 '불러다 준 이미지'를 그렸다. 모니터의 프레임은 현실과 이미지를 구분하는 경계의 역할을 하며, 일종의 창틀이 된다. 나는 저장 이미지 중 개인적인 취향(장소, 공간, 명화 등등)이나 익히 알고 있는 명작들의 일부분 등을 만들어냄으로써 미적 물질로 창작하려 했다.
Binocular|두 눈으로 본 그림
‘본 다’라는 것은 작가의 신체와 연결된 직접적이고 상식적인 문제이다. 나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거리와 차이로 인해 생기는 시각현상을 즉흥적인 드로잉과 극 사실적인 표현으로 그리고 있다. 작품은 연필이나 붓과 같은 드로잉 도구를 움켜쥔 손으로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는 순간을 눈으로 포착한 것처럼 보인다. 각 작품은 단독으로 그려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두 점이 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화면마다 서로 비슷해 보이는 구도와 각각 중심이 되는 소재를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초점을 그리는 손에 두는 것과 그려진 드로잉에 두는 것으로 구분하게 된다. 이것은 두 개의 화면이 하나의 작품으로 귀결되는 이유이며 서로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려준다.
카메라 렌즈로 포착한 이미지를 캔버스 화면에 실제 그 이상으로 표현하려는 행위만 본다면 극사실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양안시차라는 생리적 현상을 그리기라는 것을 통해 다시 재현하는 의미에서 기존의 극사실 회화들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그려진 말 _ 91 x 116.8cm _ Oil stick and Oil on Canvas _ 2016
그리는 손 _ 91 x 116.8cm _ Oil on Cnavas _ 2016
말 타는 말 _ 90.9 x 72.7cm _ Oil stick and Oil on Canvas _ 2016
나의 오른 손 _ 90.9 x 72.7cm _ Oil on Canvas _ 2016
망막에 비친 그림 _ Oil on Canvas _ 91 x 73.1cm _ 2011
망막에 비친 그림 _ Oil on Canvas _ 91 x 73.1cm _ 2011
망막에 비친 그림 _
Oil stick and Oil on Canvas
_ 41 x 41cm _ 2016
Fencing
Drawing _ 72.7 x 90.9cm _ Oil stick and Oil on Canvas _ 2015
My right hand _ 72.7 x 90.9cm _ Oil on Canvas _ 2015
망막에 비친 그림 _ Oil on Canvas _ 162.2 x 91cm _ 2010
망막에 비친 그림 _ Oil on Canvas _ 162.2 x 91cm _ 2010
The Hare and the Tortoise
_ 72.7 x 90.9cm _ Oil stick and Oil on Canvas _ 2014
My right hand _ 72.7 x 90.9cm _ Oil on Canvas _ 2014
망설이던 그림 _ 72.7 x 90.9cm _ Oil on Canvas _ 2016
망설이던 그림 _ 72.7 x 90.9cm _ Oil on Canvas _ 2016
폭력의 시대 _ 90. 51 x 72.7cm _ Oil on Canvas _ 2014
Monami 518 _ 90.9 x 72.7cm _ Oil on Canvas _ 2014
두 눈으로 본 그림 _ 말 드로잉 _ 228 x 175cm _ Oil & oil stick on Canvas _ 2015
나의 오른손 _ 228 x 175cm _ Oil on Canvas _ 2014
Never seen _ 72.7x90.9cm _ Oil on Canvas _ 2015
My right hand _ 72.7 x 90.9cm _ Oil on Canvas _ 2015
사육된 동물들 _ 90.9 x 72.7cm _ Oil stick and Oil on Canvas _ 2013
나의 오른손 _ 90.9 x 72.7cm _ Oil on canvas _ 2013
사육된 동물들 _ 90.9 x 72.7cm _ Oil on Canvas _ 2013
연필을 든 손 _ 90.9 x 72.7cm _ Oil on Canvas _ 2013
Blurred|흐린 그림
2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기형도(1960~1989)는 1985년에 발표했던 한편의 시에서 자신의 비관적인 경험과 몽상적 생각들을 통해 공업화된 도시의 불편한 잔상을 독특하게 표현했다. 그 시의 제목이 ‘안개’이다. 언제나 현실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과 은유가 섞인 비판으로 이어지던 그의 시상은 어쩌면 개인의 경험 외에도 정치나 사회적인 억압이 간접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앞날에 대해 어떤 전망도 없이 흐릿하게 관조하는 구경꾼, 끝없이 불명확한 풍경 그리고 확신과 방향성을 잃은 회색의 시선을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나에게 안개는 의미 있는 한편에 시였다.
Si Cha _ Oil on Canvas _ 120x120cm _ 2016
시차 _ Oil on Canvas _ 120x 120cm _ 2016
안개의 속도 _ Oil on Canvas _ 80x80cm _ 2017
안개의 속도 _ Oil on Canvas _ 80x80cm _ 2017
낚시 _ Oil on Canvas _ 44x38cm _ 2017
아무도 모른다 _ Oil on Canvas _ 41x41cm _ 2017
안개정국 #1. _ Oil on Canvas _ 80x80cm _ 2017
안개정국 #2. _ Oil on Canvas _ 80x80cm _ 2017
해무 _ Oil on Canvas _ 116.8.x91cm _ 2014
Rubber duck _ Oil on Canvas _ 91x61cm _ 2017
안개정국 _ Oil on Canvas _ 41x53cm _ 2017
2017타경108-- _ 131X162cm _ Oil on Canvas _ 2018
2017타경500 _ Oil on Canvas _ 80X80cm _ 2018
2016타경31070 _ 100X100cm _ Oil on Canvas _ 2018
2017타경766-- _ 50X50cm _ Oil on Canvas _ 2018
2016타경104 _ Oil on Canvas _50X50cm _ 2018
2017타경176 _ Oil on Canvas _ 72.7X90.9cm _ 2018
2015타경251 _ Oil on Canvas _ 228 X 182.9cm _ 2018
Differance|차연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있어서 본 다 라는 것은 작가의 신체적인 문제와 연결된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보는 것’과 ‘그리기’라는 주제를 회화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작업은 자연물의 앞면과 뒷면을 오버랩하여 느껴지는 생명력을 추출하고자 그린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은 앞과 뒤라는 개념이 무의미하다. 그러나 주체의 시점에 따라 규정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객체는 늘 대상화가 가능하고 따라서 앞면과 뒷면이 동시에 사유될 때, 또 다른 면이 추출되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나에게 마치 언어의 미끄러짐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느끼게 하는데 이번 작업은 입체적인 태도로 고정되지 않은 형상을 추출하고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기존의 하이퍼 리얼 회화와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Différance-Fleurs(PR) _ 90.9×116.8cm _ Oil on canvas _ 2024
Différance-Fleurs(PY) _ 90.9×116.8cm _ Oil on canvas _ 2024
Différance-Fleurs(BP) _ 90.9×116.8cm _ Oil on canvas _ 2025
Parallax _
72.7 x 91cm
_ Oil on Canvas _ 2019
Différance #1 _ 38x27cm_ Oil on Canvas _ 2021
Différance #2 _
38x27cm
_ Oil on Canvas _ 2021
Parallax
_
116.8 x 91cm
_ Oil on canvas _ 2019
Différance-Fleurs(YG) _ 72.7×90.9cm _ Oil on canvas _ 2024
Floaters |비문증
해상도가 위계를 결정짓는 이미지 계급사회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저화질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바다를 떠도는 좀비빙하(Zombie ice) 이미지를 AI 프롬프트로 변주하고, 다시 나의 시각적 경험과 관계를 맺게 한 것이다. 프레임에 맞춰 인쇄된 종이의 뒷면을 제거하고, 캔버스 천에 전사(Transcribe)한 후, 그 위에 기하학적 점, 선, 면과 다양한 색감을 표현하였는데, 이는 인터넷을 서핑(Surfing)하는 내 시각과 마우스의 궤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몸과 직면하는 표현매체인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안하고자 한 것이다.
Color of Dead Ice(slowly gone) 3-1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60.6×72.7cm _ 2022
Color of Dead Ice(slowly gone) 3-2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60.6×72.7cm _ 2022
Color of Dead Ice(slowly gone) 3-3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60.6×72.7cm _ 2022
Color of Dead Ice NO. 23060601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72.7×90.9cm _ 2023
Color of Dead Ice NO. 23060602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72.7×90.9cm _ 2023
Color of Dead Ice NO. 23060603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72.7×90.9cm _ 2023
Color of Dead glaciers #1.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60.6×72.7cm _ 2022
Color of Dead glaciers #3.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60.6×72.7cm _ 2022
Color of Dead glaciers #4.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60.6×72.7cm _ 2022
Virtual space #2.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50×50cm _ 2022
Virtual space #3.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50×50cm _ 2022
20240315 _ Oil pastel & Acrylic on canvas _ 40×40cm _ 2024
Color of Dead glaciers #5.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60.6×72.7cm _ 2022
ColorofDeadglaciers#6.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60.6×72.7cm_2022
Color of Dead glaciers #2.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60.6×72.7cm _ 2022
Color of Dead Ice NO. 2307191400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72.7×90.9cm _ 2023
Color of Dead Ice NO. 2307191300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72.7×90.9cm _ 2023
20240327 _ Oil pastel & Acrylic on canvas _ 91×116.8cm _ 2024
Color of Spring#2.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91×116.8cm _ 2023
Color of Spring #3.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91×116.8cm _ 2023
Color of Spring #1. _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_ 91×116.8cm _ 2023
No. 20240226 _ Mixed media on canvas _ 50×50cm _ 2024
No. 20240323 _ Mixed media on canvas _ 40×40cm _ 2024
No. 20240323 _ Mixed media on canvas _ 40×40cm _ 2024
20230617 _ Mixed media on canvas _ 72.7×90.9cm _ 2023
2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기형도(1960~1989)는 그가 1985년에 발표했던 한편의 시에서 자신의 비관적인 경험과 몽상적 생각들을 통해 80년대 공업화된 도시의 불편한 잔상을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시의 제목이 ‘안개’이다. 언제나 현실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과 은유가 섞인 비판으로 이어지던 그의 시상은 어쩌면 개인의 경험 외에도 정치나 사회적인 억압이 간접적인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앞날에 대해 어떠한 전망도 없이 흐릿하게 관조하는 구경꾼(Spectator), 끝없이 불명확한 풍경 그리고 확신과 방향성을 잃은 회색의 시선을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나에게 안개는 의미 있는 한편에 시였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대부분 내 스마트 폰으로 촬영되었거나 뉴스, 인터넷 신문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참고로 그것을 다시 캔버스 화면으로 불러와 희미해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칠하고 문질러서 그려낸 것이다. 막연한 불안과 걱정으로 살고 있는 하루의 기분이 반영된 탓인지 내 감각은 탁하고 흐리게 문질러져있다.
만약 이 불안과 걱정,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잘 모른다’라는 문제로 인하여 발생된다면 ‘잘 모른다’라는 문제는 시각적으로 ‘잘 안보인다’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멀리보이는 국회의사당이나 동물의 사체가 널브러진 도로, 빙판위의 낚시꾼, 해무 속을 유랑하는 배의 형상은 회색 톤으로 블러(Blur) 처리되어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상하지 않는다. 나의 그림 속에서 현실의 사건은 익명의 풍경으로 가상(Similacre)이 되고 형상의 기표는 무의미해진다.
실제로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겨울밤 도로를 가로지르던 고라니가 달리던 버스에 깔려죽었다. 육중한 금속덩어리에 고라니는 온 몸통이 갈기 찢겨져 핏자국과 살점들이 튕겨져 나갔지만, 버스 안에서 상영된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들은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다음날 그 관객 중 한명은 빙판위에서 낚시를 할 채비를 하다가 빠져 얼어 죽었다. 그를 발견한건 몇 주일이 지나 강가에 얼음이 녹고 난 후였다고 한다.
카메라 렌즈로 촬영된 이미지을 수용하고 있지만, 인간의 우선적 감각인 두 눈의 시각성으로 표현된 나의 그림은 반복적인 문지르기와 회색톤의 색감을 통해 그림 안에 모든 의미가 중요하던, 중요하지 않던 흐릿하게 그려져 있다.
캔버스 화면 밖의 관객들은 작가의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작가가 이렇게 세상을 본다는 것을 보게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외상으로부터의 도피는 때론 비겁해보일지 모르나 당대한 현실이 이해가 될 수 없는 것이라면 현실에서의 가장 적합한 그림은 뿌리고, 번지게 하거나 흘러내리게 하고, 긋고, 비비고, 지우고, 다시 그려진 빛과 색, 선과 면 또는 이미지와 기호 그리고 대상과 물성 혹은 재현으로 점철되는 회화의 조형적인 약속을 가장 적게 하는 그림일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내포한 채 희미하게 표현되는 스푸마토(Sfumato)는 불명확한 안개의 풍경을 보여주며 나에게는 현실의 반영이라 하겠다.
최 영